7.1. 디지털 작품의 진본성 유지를 위한 프로비넌스(provenence)의 무결성 입증에 관하여
이상민(경기도어린이박물관 학예팀)
닌텐도의 비디오게임 ‘동물의 숲’(이하 동숲)에서는 ‘마이디자인’ 이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게임 사용자는 자신이 디자인한 독특한 패턴으로 옷, 가구, 그리고 게임 내의 여러 아이템을 장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동숲을 즐기는 사용자 간의 문화이기도 하다. Nooksisland나 Acpatterns와 같은 동숲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수만 개의 디자인을 검색할 수 있으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와 작가 모두는 마이디자인을 사용하여 ‘모두의 박물관’(이하 모이)을 장식하고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하 박물관)에서는 참여 작가와 개별 협의를 통해 일부 작품은 동숲 내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 작품의 코드를 배포할 예정이다. 다만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공개 공유할 경우 작품의 무분별한 복제나 위변조 및 훼손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작품 공유의 전제 조건으로서 박물관에서는 작품에 대한 진위여부를 입증하고 그 가치와 작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작품에 대한 ‘보다 완벽한 프로비넌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작품의 프로비넌스란 작가의 작업실에서부터 지금 현재의 소장자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것을 뜻하는데, 오래된 작품이거나 작품의 유통과정이 복잡할수록 그 이력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과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영국에서 발생한 드루에(John Drewe)와 마이어트(John Myatt)의 미술품 위조 사건을 주목해서 살펴보았다. 당시 사건을 조망했던 로드니(Rodny Carter)의 연구에 따르면, “드루에와 마이어트의 미술품 위조 행각은 작품에 대한 가짜 프로비넌스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카이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품 위조와는 구별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위작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감식안 : 한 작가의 작품 전체와의 본질적인 유사성에 기초한 ‘전문가’의 눈
프로비넌스와 기타 아카이브의 혹은 역사적인 증거를 포함하는 학술적인 문헌
학자와 재료 전문가에 의한 물리적·기술적인 검사
하지만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최선책일까?’라는 의구심을 못내 떨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전문 기관이 드루에의 사기 행각에 철저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기관의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소속 기관 전문가의 감식안이 떨어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소개된 작품과 같이 애초에 디지털로 만들어진(born-digital) 오브젝트의 경우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 검사를 통해서는 그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가 없다.
한편, 드루에 사건과 관련하여 본 연구에서 달리 주목한 것은 ‘정보의 통제에 의한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쓰이는 이 용어는 각 거래 주체가 보유한 정보량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를 뜻하는데, 불완전하고 불공평한 정보의 분배는 정보 권력에 의한 범죄 행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프로비넌스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소수의 제한된 인원 만이 그 기록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기록관리시스템(또는 체계)을 뚫고서 아무도 모르게 비공개 기록에 접근하여 이를 위조한다면, 기록의 위조여부를 밝혀내기는 커녕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조차 알기가 어렵다. 이것이 바로 드루에의 사기 행각이 무려 10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여하튼, 드루에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명백한 사실 중 하나는 ‘작품의 진위 여부는 작품 그 자체가 아닌 관련한 프로비넌스에 의해 입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작품의 진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프로비넌스 그 자체의 무결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무결성이란 쉽게 말해서 ‘기록이 조작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인데, 프로비넌스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허가받지 않은 변조로부터 프로비넌스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며,
만약 승인된 절차에 따라 프로비넌스의 관리 과정에서 추가나 부기가 발생할 경우,
‘어떤’ 정황에서 ‘누가’ 승인하며,
승인된 추가나 부기의 표기와
그 이력에 대한 철저한 관리(추적)가 가능해야 한다.
더불어 본 연구에서는 작가로부터 작품 입수 이후의 처리 과정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여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프로비넌스의 임의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 시도해 보고자 하는 방안은 Git과 Github와 같은 분산형 버전관리시스템을 기록 관리에 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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