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유레카에 관하여

Of the Eureka

시간은 모든 이들의 입술에 걸려있다. - 알렉산더 데만트, <시간의 탄생>(2018)

시간의 의미는 고대의 시인, 주술사에서부터 근현대의 과학자, 철학자,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전해져 왔다. time, temps, tempus 등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자르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템노(temno)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어원만으로 시간의 본질이나 그 의미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템를 어원으로 두고 있는 온도(temperature), 속도(tempo) 등의 단어가 ‘열’과 ‘위치’라는 상태 변화를 측정하는 단위로 쓰이는 것을 볼 때, 시간 또한 어떤 […]의 연속적인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낮과 밤, 해·달·별, 사계절, 그리고 지금·여기·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간과 매듭지어 생각해 왔다. 심지어 닭과 고양이, 뱀, 새, 나무, 모래와 해골, 물레방아와 수레바퀴와 같이 의인화할 수 있고 물질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간의 은유와 상징으로 그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알렉산더 데만트는 <시간의 탄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그 긴 시작을 알린다. 시간은 시간을 초월한 주제이다.

크로노스x크로노스 그리스 신화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라는 두 신이 등장한다. 농경의 신 크로노스(Κρόνος, kronos)는 봄·여름·가을·겨울 뒤에 다시 봄이 찾아오는 것과 같이 반복되는 시간을 의미하며, 이는 과거 농사를 짓던 시대에 삶의 구체성에서부터 비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연대기(chronicle)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단어는 모두 크로노스(Χρόνος, cronos)에 그 어원을 두고 있으며 그 자체가 ‘시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순환하는 자연적 시간관에서부터 일정한 방향이 존재하는 과학적 시간관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대 철학에서 시간은 현상 세계 밖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의 한 모상이었으며,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 시간은 종말론적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 시간은 외부의 세계로부터 독립된 절대적 실체였으며, 시간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칸트나 헤겔과 같은 근대 서구 철학자들에 의해 인간 인식의 종합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선험적인 영역으로 그 지평을 넓혀갔다. 한편, 근대적 공간인 도시가 형성된 이후로 ‘시계’로 대표되는 기계 시간은 인간의 삶(노동)과 공간을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엔터 더 보이드 이후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사회적 제도인 동시에 과학과 철학·역사·사회·우주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으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 시공간은 사회·문화·경제·정치·세계의 변화를 들여다 볼 때 반드시 필요한 눈이 되었다. 데이비드 하비는 그의 저서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한울, 2008)에서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통·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겪은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시공간의 압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왜곡은 물질세계인 도시의 하부구조에 고통스러운 변화를 야기하였으며 그 상부구조를 재구조화 하였다. 하지만 인터넷 이후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탈물질’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은 시공간을 무의미의 심연으로 끌어들였다. 숫자 0과 1로 만들어진 디지털 세계에서 시간은 동시적·비선형적으로 흐르며 무정형적·비가시적인 네트워크는 ‘시간에 의해 절멸된’ 공간을 무한히 확장하고 영상과 미디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세상은 이미지로 전락하였다. 시공간 무의식 상태에서, 이제 우리 모두는 시각과 청각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작위의 세계를 마치 부유하듯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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